궁중에 집중되어 있어 자연히 식생활도 가장 발달하였다. 한국의 음식 문화는 여러 왕조로 계승되어 조선왕조까지 내려오면서 음식법이 연마되어 이루어졌는데 조선시대 이전의 궁중음식의 역사는 고려 말에서 조선조 성종까지 기록된<경국대전>을 통해, 조선조 궁중음식의 역사는 <진찬의궤><진연의
궁중의 일상식이 가장 잘 나타난 기록은 정조 때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依軌”로 대비(왕의 어머니)에게 7차례의 음식상을 낸 적도 있다는 기록이 있다. 궁중에서의 식사는 늘 호사스럽게 산해진미를 먹었던 것은 아니며 왕의 식성에 따라 궁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마지막 왕조의 왕족
조선왕조 시대에 걸쳐 치밀하게 기록되어온 의궤는 현재 우리나라의 기록관리 문화의 올바른 형성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 의궤에 대해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국가와 궁중의 모습에 대해 이해하고 선조들의 철저한 기록문화에 대해 본받고자 한다.
2. 의궤란 무엇인
더운 기온과 더불어 쌀농사에 적합한 천혜의 조건이다. 겨울철 3개월 동안의 강수량은 4~15% 정도에 지나지 않아 건기에 해당하며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므로 노지에서의 농작물의 재배는 거의 불가능하다.
2) 산 물.
-> 풍토의 다양성은 고조선 시대 이래 곡류, 두류 등의 작물 재배가 가능하였고
, 닭고기, 개고기를 먹게 되었으며 소금, 엿, 식초, 설탕, 후추 등의 양념을 사용하게 되었다. 곡류음식도 조리법이 다양해 졌으며 두부와 콩나물을 만들고 간장, 된장, 술, 화채, 차 등의 모든 조리법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그 후 조선시대로 들어서면서 조선왕조는 유교를 숭상하여 식생활도
들어가며
조선시대는 현 우리가 살고 있는 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역사임에 틀림없다. 또한 우리역사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부분 가운데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위한 조건중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식생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고려의
급증하여 점차 무쇠 솥을 이용한 밥을 만들기 시작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밥이 주식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2.1.3.2. 밥의 풍속
오늘날에도 밥과 관련된 속담, 밥을 이용한 관용어 등이 많다. 귀한음식으로 여기고 생명의 의미로서 ‘밥 먹었니?’, ‘밥숟갈 들었니?’와 생활수준을 나타
●종류
영조실록에는 왕의 식사횟수에 대하여 '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예부터 하루 다섯 번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영조는 하루에 세번만 상을 받았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7차례의 음식상을 받은 기록이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궁중에서 일상식은 초조반상, 아침과 저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인 주식과 부식 확연히 구분하는 특징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또 역사적사회적 환경이 식생활에 미친 영향을 보면, 조선왕조시대에는 반상(班常)을 엄격히 구분하는 계급의식과 장유(長幼)와 남녀를 차별하는 서열의식이 강했고 이로 인해서 음식을 한두 가지씩 차례로 먹는 중국이
궁중에서 쓰이는 물자는 모두 궁 밖에서 생산되는 것들로 일일이 반입하게 된다. 음식의 경우는 각 지방의 토산물 또는 특산물들이 공물(貢物) 또는 진상(進上)의 형태로 궁중에 들어오게 된다. 진상품은 궁중의 일상생활인 제향(祭享), 빈례(賓禮), 사여(賜與) 등에 소용되었다. 조선시대의 진상에 대하